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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 698 호 오징어 게임, 현대사회의 구조적 이면을 그리다

  • 작성일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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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0509
지수아

▲ 오징어 게임 포스터 (출처: 넷플릭스)


빈부격차, 한국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문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며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대기업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리해고 된 이후 빈번히 사업에 실패하며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주인공 기훈은 우연히 오징어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총 456명이 참여하는 오징어 게임에서는 참가자 한 명이 탈락할 때마다 우승상금이 1억씩 증액된다. 문제는 참가자의 탈락이 곧바로 죽음으로 직결된다는 것인데, 기훈과 상황이 다르지 않은 참가자들은 우승상금을 위해 그 사실을 외면하고 게임을 지속한다. 돈이 사람의 목숨을 이겨버린 것이다. 이처럼 영화 오징어 게임은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를 조명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낙오된 참가자들이 머무는 공간을 마치 상품 진열대처럼 조성한다. 반면 ‘부’를 특권으로 한 VIP들은 이질적인 공간에서 게임을 관전한다. 참가자 456명은 줄다리기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처럼 아이들이나 하는 게임을 통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순간의 기지를 발휘하지 못하면 바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곧바로 도태되는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체제와 다르지 않다. 이런 빈부격차, 계급론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세계 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에 따르면 2019년을 기준으로 미국 상위 1%가 미국 전체 부의 34.9%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 50%는 전체 부 점유율이 1.5%에 불과하다. 또한 코로나 19 펜데믹이 세계 경제를 강타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격차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 어떻게 대중에 소구되었나? 

  오징어 게임 흥행 성공의 원인이 ‘기생충’ 흥행 성공의 원인과 맥을 함께 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기생충 역시 한국사회의 빈부격차를 현실감 있게 다루고 있는 영화다. 주인공 기택의 가족은 모두 반지하에 사는 백수로 가난을 상징하고, 이들이 철저한 계획 아래 접근하는 박 사장의 가족들은 부를 상징한다. 기택의 가족은 끊임없이 하류층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무산이 되는데, 이는 계층이동이 쉽지 않은 현실을 메타포하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빈부격차와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에도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 개인의 행동으로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삶도 팍팍하고 힘든 와중에 눈에 보이지도 않을 변화를 위해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혹은 적극적으로 해결을 위해 봉사나 기부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사회 현실이 바뀌지 않는 것을 보며 좌절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사회를 바꿀 힘이 없는 ‘개인’은 사회의 부조리를 목격하고도 마음이 불편할 뿐이다.

  현실이 이러한데 영화마저 가혹한 삶의 현실을 보여주고 사회를 비판한다면, 사람들은 그 영화를 외면할 것이다. 그러나 그 영화가 사회 현실을 고발하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와 한 발짝 떨어진 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관조적인 태도로 사회현실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헝거게임’ 역시 빈부격차와 사회 구조적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영화의 배경이 판타지 사회였으므로, 사람들은 문제의 당사자가 아니라 목격자로서 비판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 역시 외국 사람들에게는 낯선 ‘한국’의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영화를 보며 목격자로서 사회 문제를 공감할 수 있었다는 점이 두 영화의 흥행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의 흥행 원인을 사회구조적 문제와 관련된 사람들의 심리에서만 찾기에는 영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장치가 매우 탄탄하다. 우선 오징어 게임은 기존의 다른 사회 고발 미디어 콘텐츠와 달리 ‘동화적 요소’를 도입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영화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라는 무거운 주제와 대조되는 알록달록한 공간, 어린 아이들이나 할 법한 유치한 게임 등 이질적인 요소가 많이 사용되었다. 외국에서 오락성을 띤 영화는 대개 상업적 장르로서 무거운 사회 현실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과는 대비된다.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영화는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만 한 명작’이라는 외국의 인식을 고려한다면, 오징어 게임은 가히 혁신적이다. 외신에서 오징어 게임은 상업성과 오락성을 갖춘 장르물인 동시에 탄탄한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잔혹한 서바이벌 게임에 휴머니즘과 감동적인 스토리가 어우러진 것도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참신하게 느껴지는 요소이다. 신파로 통용되는 전개를 한국에서는 이미 진부하다고 생각하지만, 외국에서는 신선하고 창의적이라는 반응이다.

  독보적인 음악 구성 또한 영화 전체의 기이한 분위기를 형성함으로써 사회 부조리 고발에 기여한다. 돈이 목숨보다 절박한 참가자들의 게임 장면에는 왈츠가 자주 등장한다. 보통 왈츠는 평화로운 세상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선율에 매혹되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세계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곳으로 왈츠와는 괴리가 있다. 이러한 괴리감은 모순적이게도 장면의 몰입감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며, 시청자의 흥미를 자아낸다. 특히 게임 참가자들이 식사 시간에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 가면을 쓴 상류층이 참가자의 목숨에 베팅하는 장면에서 사용된 차이코프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2악장’은 현실의 부조리함을 일깨워주는 데 기여한다. 오징어 게임의 막을 여는 곡이자 영화를 대표하는 ‘Way back then’은 강렬한 리코더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학창 시절에 배웠을 리코더는 그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지만, 과거의 기억은 퇴색된 채 서로를 짓밟고 살아남고자 애쓰는 참가자들의 처절함은 괴리감을 자아내고 오히려 리코더 소리는 기이하게 들린다.

  오징어 게임의 미술성 역시 극찬을 받고 있다. 독창적인 세트와 컬러풀하고 풍부한 오브제를 갖춘 세트는 세계의 호평을 받았다. 계단과 사다리로 구성된 참가자들의 숙소, 게임장으로 이동할 때 거치는 미로, 복도의 복잡한 계단 등은 살기 위해서는 위로 올라가야 하는 경쟁 사회를 상징하고 있다. 또한 다양하고 산뜻한 색감의 게임장과는 달리 바깥의 현실은 일상을 반영하듯 무채색으로 표현해 대비를 이룬 점은 작품의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컴퓨터그래픽을 최소화한 대규모 게임 세트장을 통해 현실감과 위압감을 전달해준다.

  이외에도 영화 오징어 게임에 등장한 단순한 놀이를 넘어 다양한 밈이 되었다는 점 역시 흥행의 원인이다. 오늘날의 밈은 주로 인터넷과 SNS 사이에 유행하는 짧은 인기 콘텐츠에 활용되며 문화적 모방력, 파급력, 전파력이 강하다. 어떻게 보면 오징어 게임이 단기간에 전 세계적으로 유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밈’인 것이다.



오징어 게임,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이처럼 오징어 게임의 제작 의도는 ‘자본주의 사회 고발’이지만,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오징어 게임은 동화적 요소를 통해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점을 두었지만, 사실 극의 전개나 등장인물의 성격은 여전히 진부하다. 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통 받는 계층의 모습을 그리고 있음에도 기득권의 시선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극 중 ‘한미녀’라는 인물은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성’을 무기로 삼는다. 자신의 판단 하에 가장 강하다고 생각되는 남성을 화장실로 데려가 관계를 갖고 자신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 말하기도 하고, 짝을 지어야 하는 게임에서 혼자 남게 되자 근처에 있던 여성에게 ‘언니 나 여자랑도 잘해.’라며 성을 매개로 자신과 팀을 이루기를 종용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여성혐오 논란이 일자 일각에서는 ‘벼랑 끝에 몰린 인간의 다양한 본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충분히 저런 인물이 있을 수 있다’며 반박했다. 그러나 국가의 보호가 없어 생존의 위기에 처한 여성이 자의적으로 성을 무기로 삼는 것이 과연 일반적인가 하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난민 여성의 생계형 성매매는 오랜 시간 해결되지 않는 사회적 문제이다. 난민 캠프에는 군인과 경찰이 배치되어 있으나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그들의 임무는 주로 캠프 외곽 경비로 제한되어 있어 캠프 내 치안문제가 심각하다. 살인, 폭행, 마약 등의 문제가 만연하며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피해자는 어린 여성이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생계를 이유로 지참금을 받고 어린 여성들이 조혼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들 대부분이 위장결혼이다. 어리고 예쁜 여성들을 골라 결혼한 이후 한두 달의 성생활을 즐기다 홀로 떠나버리는 것인데, 버려진 여성들은 수치심과 조롱으로 고통 받는다. 결국 결혼을 빙자한 성매매와 다름없는 것이다. 또한 난민 캠프로 통하는 모든 구호물품과 기부금을 자선단체가 독점하여 관리할 경우,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이 십상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구호물품을 두고 여성에게 ‘성상납’을 종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처럼 벼랑 끝에 내몰렸을 때 여성이 성을 수단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명백한 사회구조적 문제이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은 이 부분을 놓쳤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감독에게 여성 혐오의 의도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사회문제의 실상을 면밀히 살피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전망의 부재 역시 아쉽다. 사회에서 도태된 낙오자들의 처절한 생존경쟁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고발하고 있지만, 고발에 그칠 뿐 이렇다 할 전망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자본주의 사회가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에게 그 이면을 고발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를 다시 돌아볼 계기를 제공한다는 데 의의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빈부격차와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는 여러 요소와 계층의 문제가 중첩되어 명확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외면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빈부격차는 사회구조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인식에마저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사회를 바꾸기 위한 변화에 동참해야 한다. 그렇다면 영화 역시 사회현실을 고발하는 것을 넘어 ‘함께 도모해야 할 미래와 이상’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의 변화를 촉구할 수 있지 않을까?


윤소영, 지수아, 윤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