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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61 호 [교수사설]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한가: 현대인의 불안 이해하기

  • 작성일 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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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625
이은민

  최근 <치유와 심리이이해:마음돌봄교양 세미나>라는 과목을 강의하게 되면서 대학생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글은 현재 강의를 듣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재학중인 모든 학생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어, 지금의 나를 천천히 바라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떤 상태인가요?’


  학생들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을 던지면 돌아오는 답은 대체로 비슷하다. “그냥 바쁘고, 조금 불안하다.”라는. 특별히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음 한편에는 늘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시험 기간이 아니어도, 특별한 일이 없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불안을 느끼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이 불안을 개인의 문제로 이해하려 한다. “마음이 약해서 그렇다”, “더 열심히 하면 괜찮아질 것이다”와 같은 뻔한 말들로 포장한 채. 하지만 대학생들이 느끼는 불안은 단순히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결과에 가깝다.


  오늘날 대학생들은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살아간다. SNS를 켜면 누군가는 이미 취업 준비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해외 경험을 쌓고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성취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게 되고,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에 집중하게 된다. 문제는 이 비교가 끝이 없다는 데 있다. 기준은 점점 높아지고, 만족의 기준은 계속 뒤로 밀려난다. 결국 우리는 “아직 부족하다”는 감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에 더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불안을 키운다. 과거에는 일정한 경로를 따라가면 어느 정도의 안정이 보장된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열심히 해도 결과를 확신할 수 없고, 노력과 보상이 반드시 연결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대학생들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이 선택이 맞는 걸까?”라는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는 단순한 고민을 넘어 지속적인 불안으로 이어진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는 쉬는 것조차 불안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순간에도 “이렇게 있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휴식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죄책감을 동반한 행위가 되어버렸다. 결국 우리는 몸은 쉬고 있어도 마음은 쉬지 못하는 상태, 즉 심리학적으로 “인지적 각성”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대학생의 불안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비교를 부추기고 끊임없는 성취를 요구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형성된다. 그렇다면 이 불안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중요한 것은 불안을 무조건 없애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불안은 때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신호가 과도하게 커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나는 무엇과 비교하고 있는가?”, “이 기준은 정말 나의 것인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또한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때 불안은 조금씩 줄어든다.


  결국 우리는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에 휘둘리지 않을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불안을 개인의 결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이해하고, 그 속에서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불안은 어쩌면 실패의 신호가 아니라, 변화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