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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사회

제 737 호 2024 자살 공화국, 남겨진 사람들

  • 작성일 2024-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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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276
곽민진

2024  자살 공화국, 남겨진 사람들


  자살 공화국, 대한민국.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났으나 대한민국은 여전히  OECD 회원국 자살률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3년 사망원인 통계(잠정치)에 따르면 2023년 자살 사망자는 13,770명으로 전년  대비 6.7% 증가했다. 보건복지부·국립정신건강센터의 2021년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중 평생 한 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한 사람의  비율은 10.7%. 2024년, 여전히 우리나라 성인 중 14.7%가 평생 한 번 이상 자살을 생각한다.


▲ 연령대별 자살률 (사진 : 통계청)


   자살은 대한민국 모든 연령층의 주요한 사망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연령대별 사망원인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은 ▲10대  42.3%, ▲20대 50.6%, ▲30대 37.9%로 이들 연령대에서 자살이 사망원인 비율 선두를 차지했다. ▲40대는 20.2%, ▲50대는  9.4%로 이들 역시 적지 않은 수치다.

자살은 심리상태, 처한 상황과 같은  개인적 요인에서부터 사회적 요인과 같은 외부 요인까지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을 한 결과라고 하이더는 말했다. 개인마다 다른 과정으로  이어진 자살 현상은 갑작스럽게, 무작위로 나타나는 자연재해가 아니다. 자살은 경제적 요인 이외에도 인구·사회적 요인, 환경적 요인, 개인적 요인  등이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자살의 원인이 복합적인 상호 관계를 이루고 있기에 사회·환경·문화적 영향과 개인적인 대처 능력에  따라 자살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본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자살 예방 국가전략 프레임워크의 핵심 요소로 ‘위험 요인과 방어 요인’을 제안하며 자살의 요인이 개인적ㆍ사회문화적ㆍ환경적  차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2021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개발한 ‘LIVE LIFE 지침’은 국가가 자살 예방 전략을 수립할 때  자살의 요인이 여러 영역과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한 동시에, ‘다부문 협력(multi-sectoral collaboration)’이라는 개념에  대해 강조했다. 이는 자살 현상을 개인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것에서 나아가 사회적 요인을 고려하고, 관련 대책을 수립할 필요성에 대해 시사하는  것이다.


   한편, 높은 자살률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자살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2023 자살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자살 생각 유경험자 중 도움 요청 경험이 있는 경우는 41.1%이며, 전문가 상담 경험이 있는  경우는 7.9%로 2018년(4.8%)과 비교했을 때 3.1% 증가했지만, 전문가 상담 등의 도움을 구한 비율은 여전히 높지 않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장은 "젊은 층에선 정신과 치료에 대한 문턱이 많이 낮아진 데 비해 노인 인구에선 아직 문화적 편견이나  건강상의 문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정신과 진료의 문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자살 시도 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지  않은 사람은 자살 사망률이 18.5%, 진료받은 사람의 사망률은 16%로 감소했으나, 이 문턱을 넘지 못한다면 의미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자살에  대한 인식, 2차 가해 우려


   불과 몇 년 전, 한국 사회에서 자살은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일탈 행위’였다. 2009년 한국종합사회조사에 따르면, 전체  1,599명의 응답자 중 68.9%가 “자살은 윤리적 죄악이다.”, 60.1%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답했다. 생명 존중에 대한 국민 태도  조사에서도, 전체 1,025명의 응답자 중 82.9%가 “자살은 비정상적인 행동이다.”, 50.0%가 “가족이 자살하면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에서 자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자살자 및 자살 시도자들은 비난과 수치심의 대상으로 인식되었고, 치료보다는 숨기기에  급급해져 버렸다. 특히, 이러한 인식은 자살에 대한 은폐와 2, 3차 가해의 원인이 될 수 있어 주의를 요한다. 실제로 유족들에 의한 사망신고  시 자살로 기재되는 경우가 전체의 25~44%밖에 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는 자살에 대한 한국 사회의 오래된 시선과 침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한국의 자살률이 OECD 1위라는 사실과, 유명 인사들의 자살 사건들을 접하면서 자살의 심각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자살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는 질문에 대한 동의 비율이 약 12%가량 감소했고, 전체 응답자 중 79.8%가 자살을 예방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77.7%가 자살을 막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답한 것은 자살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앞선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9.7%가 “자살하는 사람은 가족들에게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라는 데에 동의했으며,  58.4%가 “자살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하고 있다. 또한,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와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답한 사람들이  53.8%나 되었는데, 이러한 응답 결과는 자살에 대한 노골적인 편견은 사라졌어도 자살 행위자와 유족들을 향한 은밀한 편견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잠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자살  유족, 남겨진 이들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람을 자살로 잃고 삶의 변화를 겪은 사람들을 자살 유족 혹은 자살  생존자라고 정의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잃은 배우자 및 혈연 가족, 친밀한 친구나 동료, 이웃, 지인만을 자살 유족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자살 사건 혹은 고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자살한 사람에 대한 심리적인 책임감이나 심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사람 역시 자살 유족에 해당한다.


   한국 인구학회에서 발표한 ‘사회적 관계 내 자살 경험과 가족의 자살 생각 및 자살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가까운 사람 중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응답자는 그렇지 않은 응답자보다 1개월간 자살 생각을 할 확률이 높았다. 또한, 가까운 사람 중 자살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도 자살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까운 사람의 경우, 자살행위 당사자의 상황과 결정 맥락을 자세히 알 수  있기에 동일시 및 상실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자살 1건 발생 시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되는 유족의 수는 최소 5명에서  10명. 2021년 기준, 한 해 발생하는 자살 유족은 약 66,760명~133,520명으로 절대 적은 수가 아니다. 이러한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갑작스럽게 남겨진 이들을 위한 사후 대책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건강한 이별을 돕는 사후 관리 제도는 자살 유족들이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할 사후 예방책이기 떄문이다. 사후 관리 제도는 자살 유족 지원, 자살 사후 대응체계 구축, 자살 급증 지역 사후 대응 등으로 나뉜다. 현재  한국생명존중희망 재단에서는 자살 유족을 위한 여러 지원 사업이 제공되고 있다.


   자살 유족 원스톱 서비스란 사건 발생 초기부터 개입해 자살 유족들이 소외되지 않고, 초기 대응부터 심리,  환경, 경제 등 여러 부문을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해당 서비스는 과거 공급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유족의 직접 방문 형태로 운영되었지만,  현재는 주로 경찰 조사 과정에서 신속히 인계되어 사업 설명 및 동의 여부를 확인한다.


▲ 자살 유족 원스톱 서비스 전달체계 (사진:https://www.kfsp.or.kr/web/contents/contentView/?pMENU_NO=456)


   서비스는 심리 정서, 환경 경제, 국가 복지정책 연계로 나누어져 지원되는데 심리 정서 지원 영역에서는 애도 상담 및 프로그램, 자조  모임, 심리 부검 면담 등을 자살 유족의 연령 및 고인과의 관계에 따른 특성을 고려해 운영 중이다. 환경 경제 지원 영역은 거주지 내에서 사건이  발생한 경우, 자살 사망 현장을 수습하는 데 필요한 특수청소지원비, 사망 장소를 정리하고 심리적 안정을 위해 관할 지역 내 임시 주거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일시 주거비, 고인 사망 후 검안, 시신 이송 등 사후 행정 처리비, 고인의 자녀 학자금, 남겨진 이들의 건강한 애도와 심리적 안정을  위한 정신건강 치료비, 관련 법률 행정 처리 등 당장 눈앞에 일이 닥친 자살 유족들을 위한 실용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어 있다.



▲ 자살유족 동료지원 활동 (사진:https://www.newsro.kr/article243/275959/)


   자살 유족 동료 지원 활동은 회복된 자살 유족인 동료 지원 활동가가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현재 어려움을 겪는 유족에게 도움을 주는  활동이다. 자살 유족 동료 지원 활동가는 동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살 유족들에게 회복 이상의 심리적 안정감, 정서, 인지, 행동적 역기능 예방  등 좋은 영향을 주는 가까운 이해자이자 함께 위기를 이겨내는 동료이다. 동료 지원 활동가는 활동 자체에서 이타심, 자부심을 가지고 자살 유족의  회복에 도움을 주는 동시에 그들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도 한다. 조동연 동료 지원 활동가도 재단 공식 인터뷰 당시 ‘서로 돕고 있는 거지  제가 돕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유족분들과 함께 만나며 감정 해소의 기회가 되는 듯하다.’라고 밝혔다.


미흡한  사후 관리 사업, 사각지대 속 남겨진 사람들


  자살 유족을 위한 다양한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후 관리, 지원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현재 9개 시도, 총 95개 지역에서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산하 수행센터는 총 109개로, 광역 9개, 거점 6개, 기초 94개를 운영  중이다. 원스톱 서비스는 관할 시도 내부에 주민등록을 두고, 실거주지가 관할지역임을 증빙해야만 혜택을 수혜, 적용받을 수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전국 사업은 현재 예산 등의 사정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동료 지원 및 돌봄 활동가 사업의 참여 인원수는 동료 지원 활동가  24명, 돌봄 활동가 25명으로 중복 제외 총 34명이 활동 중이다. 그러나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아 적은 수와 낮은 인지도로 아쉬움을 남긴다.  자살은 예방도 중요하지만 자살 유족에 대한 사후 관리 및 지원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자 한국자살예방협회의 기선완 회장은 OECD 평균 자살률의 두 배 이상인 나라라는 심각성에 비해 아직 정부의  정책은 다소 미흡하다고 평했다. 특히 제자리걸음인 병원 응급실 기반의 자살 시도 사후관리 사업과 자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우울증에 대한 치료  접근성이 부족함을 지적하며, 사후 제도의 체계적인 관리와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대학생 자살 문제 및 제도 인식 조사 결과 (사진: 곽민진 기자)


    자살 문제는 과도한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대학생들에게도 가까이 있는 문제다. 학보사에서는 최근 대학생들의 자살 문제 및  제도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총 110명 참여)를 진행했다. 설문자 중 48.2%가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매우 크게 인식하고 있고,  93.6%가 자살 문제에 대한 관련 정책 및 지원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또한, 자살 유가족 지원 및 사후 관리 정책들에 대해서  79.1%가 자세히 모르며, 86.4%가 자살 유족 정책 및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이어서응답자의 11.8%가 해당 정책의 대상, 지역에 비해 한정적인 운영이 아쉽다는 답변을, 62.7%가 제도에  대해 홍보, 인지가 부족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이  외에도 정책 지원 방식 및 선발 기준 재고의 필요성, 자살 예방 교육 실효성에 대한 비판 등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현 조사는 경쟁 사회의 압박 속  2024년 젊은 층의 과반수가자살 문제의 심각성과 사후 정책 필요성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자살 유족 관리 운영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자살 유가족 지원 및 사후 관리 정책에 대한 무지와 부족한 홍보, 한정적인 대상 운영은  정책의 접근성을 제한하기에 고려가 필요하다. 자살 문제는 단순한 지원을 넘어 자살 유족 및 행위자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과 관계의 개선이라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잃은  자와 남은 자, 모두를 위한 내일


   일반 국민들은 물론 그들의 지원과 예방, 관리에 앞장서야 할 정책 결정자들조차 자살하는 사람들이 정상인들과 다르며, 자살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집단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는 한국건강증진재단의 보고가 불과 2013년이다. 집단주의적 가치를 선호하는 한국 정서상 깊은 곳에 내재한  반감을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더 이상 상처받는 이들이 늘어나지 않도록, 모두의 열린 인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인식의 전환이 가장 시급한 동시에 이상적인 해결책이다. 현재 우리는 부족하지만, 자살 유족과 행위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그들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발맞춰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모두가 함께 보내는 작은 목소리와 따뜻한 시선들이, 그들에게는 세상이 변하는 순간이자  내일로 나아갈 용기가 된다. 모두를 위한 변화의 내일이 오기를 기대한다.


* 이 기사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주최하고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가 주관하는 생명존중 기사공모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곽민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