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7 호 수업녹음, 매크로, 강좌 거래, 무엇이 문제인가?
수업녹음, 매크로, 강좌 거래, 무엇이 문제인가?
종이나 전공책에 손으로 필기를 하는 대신 노트북이나 패드, 수업 보조 어플을 사용하고 있는 강의실의 풍경은 이제 새롭지 않다. 수강 신청이나 대부분의 행정 처리를 전자기기를 통해 해야 하니 노트북 같은 전자기기를 활용해 강의를 수강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정착된 것이다. 전자기기와 수업 보조 어플은 필기의 용이성만이 아니라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수업 관련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강연자의 동의 없이 강연 내용을 녹음하고 사적인 이익을 위해 녹음, 필기본을 판매하는 행위, 매크로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해 수강 신청에 참여하거나, 인기 과목들을 현물로 교환, 판매하는 행위 등이 법률적, 윤리적 문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녹음 어플 시장은 음성인식, 자연어처리를 비롯한 AI 기술을 접목하거나, 키워드, 하이라이트, 요약 기능 등 다양한 기능들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며 과열 경쟁 중이다. 강의 녹음 외에도 다양한 업무, 일상 측면에서 녹음이 일상화되면서 사용자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기업들의 투자는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서 클로바노트, 다글로, 굿노트, 노타빌리티 등은 최근 학생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녹음 어플들이다.
작년 9월 이후 학교 강의와 그룹 과제에 클로바노트를 활용하는 학생들의 증가로 클로바노트 사용자 중 20대 사용자가 전달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는 클로바노트의 발표를 보면 대학생들이 녹음 앱 사용자들 중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학생들의 일상 속에 녹음 어플이 자연스레 자리를 잡으면서 녹음 어플을 활용해 복습을 하거나 녹음 내용을 소장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데 최근 강의 녹음본 거래에 대한 글을 에브리타임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000교수님 7/20 인문 사회학 강의 녹음본 구합니다’ 같은 게시물은 학기 중 흔하게 볼 수 있다. 해당 녹음본을 주고받으며, 사례로 기프티콘이나 현물을 주고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로 관련 거래를 해본 학우들에 따르면, 감사의 표시로 작게는 카페, 편의점 기프티콘을 주고 받지만, 아예 현금 입금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한다. 숙명여자대학교는 수업 녹음본을 공유하는 오픈 채팅방이 공공연히 마련되어 있으며, 보통 강의 하나 당 커피 기프티콘 하나로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수업 녹음본 거래는 불가피한 이유로 강의를 놓치거나, 참석하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좋은 거래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이러한 거래가 법률적으로 문제는 없을까?
강의 녹음과 법률적 문제
▲ 관련 법률 정리 표 (사진: https://sgunews.sogang.ac.kr/front/cmsboardview.do?currentPage=1&searchField=ALL&searchValue=&searchLowItem=ALL&bbsConfigFK=3608&siteId=sgunews&pkid=908094)
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부와 저작권보호원이 함께 발간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저작권 보호 지침 자료집’에서, ‘대학생이 반드시 지켜야 할 저작권 상식 자료집학생들이 교수의 강의 내용을 녹음하거나 녹화하는 것에 대해 “혼자서 수업을 참고하려 이용하는 경우 외에는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후 초상권 등 다른 권리를 침해할 수도 있다며, 강의 내용을 녹음하거나 녹화하려면 사전에 반드시 교수의 허락을 받은 다음 허락받은 이용 방법과 조건의 범위 내에서만 사용해야 한다고 전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통신 및 대화 비밀의 보호)에서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청취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 강의 녹음은 통신비밀보호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통신비밀보호법이 ‘녹음’에 대한 법률이기 때문에 강의 녹음 또한 해당 법의 적용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발언자의 의사와 기대, 대화의 내용과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대학 강의를 ‘공개되지 않은’ 대화라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관련해서 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권세진 교수는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일대일 대화의 의미를 함축하는 ‘타인 간’이라는 조건을 충족한다고 볼 수 없다”고 전했다.
교·강사의 강연은 ‘어문저작물’로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다. 어문저작물은 말과 글로 구성된 저작물인 소설, 시, 각본, 연설 등을 말한다. 권 교수는 “기본적으로 강의 내용 녹음은 강연자의 저작물을 복제하는 것으로 저작자의 이용 허락이 필요하다”며 “다만 저작권법 제30조(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에 따라 특정한 상황에는 허락 없이도 복제를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작권법 제30조에서는 ‘비영리 목적’으로 개인,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의 이용을 위해 복제하는 경우를 저작물 복제의 허용 조건으로 두고 있다. 따라서 개인적인 목적으로만 강의를 녹음한다면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반면 1:1 메신저를 통해 녹음 파일을 공유 혹은 거래하는 경우는 저작권법에 위배된다. 권 교수는 “메신저를 통한 공유는 인터넷을 통한 전송으로 저작권법 제30조의 ‘한정된 범위’라는 허용 조건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통해 공유된 녹음본은 확산 범위를 파악하기 어려워 저작자가 문제를 제기할 시 법적 책임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백경일 교수는 앞선 설명처럼 저작권법 제30조에 따라 학생이 영리적 목적 없이 순수하게 자기 학습에 활용할 목적으로 교수의 강의를 녹음 또는 녹화한 것이라면 적법성이 인정될 수 있지만, 만약 교수의 강의를 녹음 또는 녹화한 학생이 10명 이상의 범위를 넘는 공중에게 그 녹음본을 전파하고 판매까지 한다면 이는 영리적 목적에 저작권법 위반죄가 되기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프티콘이나 금전을 통해 녹음 파일을 거래하는 행위는 파일 공유를 통해 직접적인 이득을 취하기 때문에 저작권법 제30조의 ‘비영리 목적’에 해당하지 않는 명백한 불법 행위이다. 아무리 소액이라도 녹음물을 판매하는 것은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타인에게 녹음을 요청받아 이를 대신해 줌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교강사가 학생들의 녹음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워 강의 녹음을 제재하고 있지 않지만, 학생들은 개인적인 복습과 소장 이외에 공유, 거래하는 행위가 위법 행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명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이러한 상황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던, 치열한 학점 경쟁과 압박 속에 놓인 학생들의 입장에 대해서도 고려가 필요하다.
매크로 사용 수강 신청과 강의 판매
수강 신청 기간 에브리타임에는 1년 중 가장 활발하게 글이 올라온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글이 있다. 바로 매크로를 사용한 수강 신청 글과 강의 판매 글이다.
▲ 에브리타임 매크로 관련 게시물 (사진: https://everytime.kr/369475/v/333607515)
매크로란 마우스나 키보드로 여러 번 해야 할 동작의 순서를 미리 설정하면, 클릭 등 한 번의 입력만으로 일련의 명령을 자동으로 실행 시켜주는 자동명령 프로그램이다. 이를 수강 신청에 사용하면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수강 신청을 해주기 때문에, 형평성 등의 문제로 대부분의 대학교에서는 공식적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매번 에브리타임에는 매크로로 수강 신청이 가능한지 묻거나, 매크로를 사용해 수강 신청에 성공했다는 글이 빈번하게 올라오고 있다.
▲ 에브리타임 강의 판매 관련 게시물 (사진: https://everytime.kr/search/all/%ED%8C%9D%EB%8B%88%EB%8B%A4)
수강 신청이 어려운 인기 교양이나 온라인 강의 같은 경우, 수강 신청 시작과 동시에 강의 판매 글이 올라온다. 구매자가 쪽지로 판매자에게 가격을 제시하면 서로 시간을 상의한 후, 판매자가 특정 시간에 자신의 강의 신청을 취소하고, 구매자가 바로 신청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다른 사람이 강의를 신청할 수도 있다는 위험이 있지만, 이를 알면서도 강의를 구매하는 것이다. 강좌 판매는 쪽지로 가격을 제시하고 거래하기 때문에 정확히 얼마에 강의가 판매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위에 두 명보다 고가로 삼' 등의 댓글로 미루어 보았을 때 꽤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매크로 사용 수강 신청과 강의 판매의 법률적 문제
우리 학교 교칙에서는 '강의 거래를 시도하거나, 매크로 등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경우(정상적인 수업 운영의 기본기능 수행을 고의로 방해한 것이 적발된 경우) 수강 신청이 취소될 수 있으며, 교내 징계에 회부될 수 있고,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처벌 사례와 구체적인 처벌 사항에 대해 알아보고자 학사운영팀에 직접 문의해 본 결과, '직접 매크로나 강의 판매와 관련해서 징계한 적은 없으나, 외부 업체에서 매크로를 사용해 경찰에서 공문이 온 건과 관련해 징계한 적은 있다.'라며, '법적 처벌 근거가 없어, 세부적으로 어떻게 처벌할지는 아직 검토 중이다.'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현행법상 매크로를 이용한 수강 신청이나 강의 판매에 대한 법적 처벌 근거는 없다. 매크로를 사용하여 학교 시스템에 장애를 일으킨 경우에만 업무방해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매크로로 인해 학내가 아님 외부에서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징계가 가능하다.
예방 대책
매크로를 사용한 수강 신청이나 강의 판매의 근본적인 원인은 수강 신청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인기있는 교양의 경우 정원은 90명인데, 장바구니에 해당 강의를 넣어 놓은 학생은 160명에 다다르기도 한다. 듣고 싶은 강의나 들어야 하는 강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슷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까? 아직 완벽하게 효과가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새로운 수강 신청 방식을 도입을 통해 해결 방법을 모색해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우리 대학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연세대의 '경매 방식', 카이스트의 '무작위 추첨', 숙명여대의 '학년-직전 학기 이수 학점 -직전 학기 학점 순위제'같은 방법은 학생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기존 방식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매크로 사용과 강의 판매 단속을 학교 규정으로 강화한다면, 이와 관련된 문제는 점차 해결될 것이다.
곽민진 기자, 김지연 기자